생활임금 현황과 발전과제
인 수 범(시민과대안연구소 연구위원)
2014년에 이어 생활임금에 대한 논의와 실행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부천시와 서울시에서 시작한 생활임금 논의는 경기도를 거쳐 주요 지방자치체에서 조례 제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천시에서는 부평구에서 처음으로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하였고 인천시청과 남동구청 등에서 적극적인 검토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조합에서도 생활임금에 대한 관심과 요구가 증가하고 있다.
생활임금은 ‘노동자들이 적정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수준’으로 경기도 부천시와 서울 노원구·성북구에서 주로 지자체와 관계있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적용하고 있다. 생활임금은 그동안 법정 기준으로 노사 간에 매년 교섭 대상이었던 최저임금과 비교되고 있다.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임금수준’이다. 경영계에서는 최근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시급 6,000원 수준도 높다고 주장하고 있고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낮아 시급 10,000원은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2015년 들어 노동부장관이 노동시장 개혁을 이야기하면서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정부의 주장대로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현재 생활임금 수준과 비슷한 수준이 되기 때문에, 생활임금과 최저임금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선 생활임금은 명목적으로 ‘가족임금’ 개념을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저임금도 이런 의미의 최저생활 수준을 내용상 포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개념 정의상 혼란이 있다.
또한 생활임금은 지자체 차원에서 100~300명 정도의 공공부문 노동자에게만 적용되고 있고, 최저임금은 전국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기 때문에 새로운 임금개념인 생활임금 보다는 최저임금 수준을 향상시키는 게 더 보편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반면에 한국 현실에서는 여전히 최저임금도 지키지 않는 사용자들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생활임금이 지자체에서 확산되면 결과적으로 최저임금 수준도 인상하고 적용범위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도 있다. 생활임금과 최저임금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생활임금이 노동자의 임금수준 향상에 기여할 것이라는 데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분명히 생활임금은 최저임금 수준 상위에 새로운 레이어로 존재하는 기준이고, 주로 지자체가 공공부문을 대상으로 설정한 임금수준이기 때문에 생활임금이 확산되면 전체적인 노동자의 임금수준 향상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활임금 산출 기준은 ‘근로자 평균임금의 50%’+‘생활물가 인상액’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의 생활임금은 시급 7,150원(서울시 노원구)인 데 비해 인천시의 생활임금은 시급 6,220원(인천시 부평구)으로 시급에서 930원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는 시급 6,050원으로 인천시 부평구 보다고 시급에서 170원이나 낮은 수준이다. 부천시는 생활임금 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한 도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실제 생활임금 수준은 최저임금 수준을 질적으로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지자체별로 생활임금 수준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해당 지역 차원의 생활물가 및 지자체 경제능력 격차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고, 생활임금 결정과정에 노동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정도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인천 최초로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하고 올해 첫 시행을 하고 있는 부평구는 “부평구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적정한 생활임금 기준을 정함으로써 근로자들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자”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인천시 전체가 재정위기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상황임에도 생활임금제를 실시하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정책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부평구에서 생활임금을 적용받는 노동자 수는 284명이고 최저임금 보다 월 133,760원을 더 받을 예정이다. 인천시 차원에서 시청이나 남동구청, 남구청 등에서 생활임금제를 실시하게 되면 부평구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2016년에 생활임금 수준이 실제로 어느 수준이 되느냐에 따라 생활임금의 실효성에 대한 판가름이 날 것이다.
서울시와 인천시의 생활임금 시행과정 상의 차이점은 서울시는 2014년 9월에 ‘서울형 생활임금제’를 발표하여 서울시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모습을 보였음에 비해 인천시는 기초지자체인 부평에서 서울시와 부천시의 생활임금제를 참고하여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하는 과정을 밟았다는 점에도 있다. ‘서울형 생활임금제’는 물가-가계소득·지출을 반영한 실제 생활 가능 임금 제시, 서울시 생활임금 산정기준으로 ‘3인 가구 가계지출모델 개발’, 서울시 직접 고용 및 투자출연기관에서 용역·민간위탁근로자 및 민간영역으로 확산유도 계획, 심의의결기구로 생활임금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 부평구는 인천시의 체계적인 생활임금제 실시계획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생활임금 공청회를 통해 타 지자체의 경험을 공유하고 시 의회와의 논의를 거쳐 생활임금 조례를 제정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부평구는 결과적으로 서울형 생활임금제를 기본 모델로 삼을 수 밖에 없었다. 2015년 하반기에는 인천시 차원에서도 ‘인천형 생활임금제’에 대한 체계적인 계획과 논의가 활성화되어 다른 기초자치체에서도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임금제가 실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15년 현재 전국적으로 생활임금제를 실시하거나 도입 예정인 지자체는 26개에 이르고 있다. 노동자의 실질적인 임금수준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생활임금제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크게 보아 세 가지 발전과제가 놓여 있다.
첫째, 생활임금제가 적용되는 노동자 범위가 일부 노동자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그 의미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서울시와 부평구 모두 직접고용, 용역, 민간위탁 노동자를 생활임금 대상으로 설정하고는 있지만 1차적으로는 지자체 소속 노동자와 출자·출연기관 노동자가 대상이 되고 있는 현실이다. 생활임금 적용범위가 간접고용 노동자 및 민간부문 노동자까지 확대되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둘째로는 생활임금 수준이 최저임금 보다는 높게 결정되고 있기는 하지만 노동자들이 적정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 수준이 낮아서 시급 10,000원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대로라면 생활임금 수준은 현재 최저임금의 2배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적 생활임금 수준은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인 1.2배~1.3배 정도에 그치고 있다. 생활임금이 사회적 의미를 가지려면 최저임금 수준과는 질적인 차이를 보이는 임금 수준에서 결정될 필요가 있다.
셋째로 생활임금 결정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공식적으로 생활임금위원회에서 노사정이 함께 논의하는 절차가 마련되어야 한다. 부평구에서도 생활임금심의위원회가 있기는 하지만 생활임금 결정에서는 부평구청의 판단이 주요하게 작용하였다. 실제로 생활임금 수준이 서울시와 부평구가 다르게 결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정이 합의할 수 있는 논의구조를 만들어서 이해당사들의 이해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